Kee Young's obituary
From 1958 to 1961, Kee Young was assigned by the South Korean government to help rebuild the nation's economy and travelled all over the world, returning to South Korea to apply his learnings to help build the country's agricultural engineering infrastructure. He raised his family of six in Jinhae by the ocean, before moving to Seoul in 1974 to work for Hyundai Group. From 1975 to 1985, he held an executive director position at Hyundai Engineering, where he led the development of some of South Korea’s first defensive weapons. He retired at age 51 from Hyundai and later served as a consultant at A-Kyung for two years.
Following his retirement, he and his wife moved to the United States in 1989, following his children Jae Gyu, Ji Won and Ji Sun, to support them as they started their own families in America. There, he was a dedicated member of his church, the First Korean Presbyterian Church of Philadelphia, where he served as an elder from 1997 to 2004. Outside of church, he spent his days studying English and would often translate novels between the Korean and English languages as a hobby. While reserved in nature, he maintained an active role in his grandchildren's lives, often citing his time with them as his most enjoyable moments.
Kee Young passed away peacefully at age 86 with his family by his side on April 6, 2020 in Lansdale, Pennsylvania. He is remembered as a loving and devoted father, grandfather, brother, son and husband, and survived by his wife, Young Soon Choi in Pennsylvania, as well as sister Gap Sook Kwak and brother In Young Kwak in South Korea.
He is remembered by four children: Jae Gyu (with wife Marcia Kwagh), Ji Won (with husband Dong Min Chang), Ji Sun and Ji In (with husband Jin Young Kim); and remains in memory with his eight grandchildren: Lydia Byun, Jeremy Kwagh, Eunice Chang (with husband Wung Mun), Hannah Kwagh, Yeana Kwagh, Geon Hee Chang, Yunji Chang and Yisu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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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고 곽기영님 께서는 1934년 2월 18일에 경상남도 부산에서 아버지 곽종락님과 어머니 김기선님에게서 세자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어리실 적에 일가족이 일본의 어느 시골 마을로 이사를 가셔서 일제 강점기를 보내셨다고 합니다. 1945년 6월 할아버지께서 11세 되는해에 귀국하셔서 마산에 정착하시고 한국동란 (1950-1953)을 겪으셨고, 마산 고등학교를 졸업하시고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기계공학과를 1957년에 졸업하셨습니다. 1959년10월 28일에 부 최덕규, 모 김점수씨의 1남2녀 중 차녀 최영순양과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셨습니다.
1958년 부터 1961년 까지 할아버지 께서는 대한민국 정부의 산업화를 위한 일환으로 추진한 엘리트 엔지니어의 그룹에 선발 되셔서 북미와 서부유럽 등지에서 수많은 연수와 실전 경험을 통하여 습득된 기술 자원을 토대로 국영기업 충주화학 제 1 비료공장에서 한국 산업의 기계화, 특히 농업 생산기반의 현대화에 큰 기여를 하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1963년에 진해화학 제4 비료공장으로 전직하신 후 세자녀를 키우셨고, 진해시 경화동에 있는 개척교회인 북부교회(고신)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셨고 서리집사로서 주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1974년에 현대건설 서울 본사에 기계부장으로 입사하시고 은평구 역촌동 308번지에 정착하심과 동시에 그당시 주변에 고신 교단교회가 없어서 걸어서 15분거리 은평구 갈현동에 위치한 세광교회 (합동)에 등록하시고 주님의 몸되신 교회를 충성스레 섬기셨습니다. 1975년에 현대 중공업에 생산.기술이사로 발령 받으신 후 1985년 까지 기관차및 방위산업 중장비의 국산화를 성공시키는 역사적인 일에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1985년에 현대기업에서 은퇴하신 후 수년간 신설기업 아경건설(주)에서 기술자문으로 계셨습니다.
1989년에 세자녀들이 이미 유학중인 미국으로 이주하셔서 필라델피아 제일장로교회 (고신)에 등록하시고 그 근처에 집을 구하신후 주님의 교회를 위해 헌신하셨고 피택 안수집사를거쳐 1997년 5월 31일에 시무장로로 피택되어 변함없이 헌신하시다가 2004년 11월 20일에 은퇴하셨습니다. 은퇴하신 이후에도 여전히 매일 책상에 앉아서 성경을 읽으셨고, 항상 자녀들과 교회와 담임목사님을 위해 기도하셨읍니다. 취미생활로 영어 공부를 끊임 없이 하시는 가운데 필라델피아 교민사회에서 영문 서류 번역 무료봉사를 하셨고, 특히 C. S. Lewis의 저서를 즐겨 읽으시면서 번역도 완성하셨습니다. 내성적인 성격과 선한 성품을 타고 나셔서 법이 없어도 사실 점잖은 분이셨으며, 자식을 포함하여 남 신세지시는것을 극히 싫어하셨고, 손주들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셔서 할아버지의 옛날 보릿고개 시절 얘기와 성경 동화를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이야기 해 주셨던 사랑이 넘치시는 할아버지 였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2020년 4월 6일 오후 8시 45분에 각지에서 모든 가족들이 모인 가운데 하나님이 허락하신 86세의 수를 다하시고 참으로 평안하신 모습으로 광야와 같은 인생의 여정을 마치시고 천국에 입성하셔서 예수님의 품에 안기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이곳에 남겨진 가족들에게는 사랑이 충만하고 헌신적이셨던 아버지, 할아버지, 형님, 오빠, 그리고 남편으로 기억되실 것이며, 한평생 믿음의 삶의동반자이셨던 최영순 권사님이 Lansdale에 사시고 여동생 곽갑숙님과, 남동생 곽인영님이 한국에 사십니다.
네명의 자녀되는 장남 곽재규 장로 (자부 이용현집사), 1녀 곽지원 (사위 장동민 목사), 2녀 곽지선 목사, 3녀 곽지인 (사위 김진영)과 여덟명의 손자녀되는 변경림 (Lydia Byun), 곽동섭(Jeremy Kwagh), 장윤희 (손주사위 문웅), 곽한나 (Hannah Kwagh), 곽예나 (Yeana Kwagh), 장건희, 장윤지, 그리고 김이수 (Michelle Kim) 모두의 가슴 속에 살아 계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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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ies & condol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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